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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엄청난 명대사를 쓰자

작법 사담 : 세계 구축으로 백 가지 의미를 한 마디에 녹이기


 이 글은 멋진 대사를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사라고 특정하기는 했지만 서술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정확히는 스토리가 있는 글에서의 '엄청난 문장 하나를 쓰는 법' 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짧지만 의미심장하고, 듣는 순간 헉 하면서 가슴이 철렁하는 것 같은 묵직한 문장. 작품을 읽고 나서도 결정적인 장면으로 떠오르고, 영화에서라면 리뷰에서 두고두고 언급되는 명대사가 되는 그런 엄청난 한 줄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문장력은 이번에는 진짜로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무거운 엉덩이가 조금 필요합니다.




 서론은 짧게 하고 바로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 글에서의 명대사를 쓰기 위한 스텝은 단 두 개 : 


 1. 문장은 내버려두고 일단 이야기를 쓴다.
 2.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면 아무거나 써도 대개 엄청나진다.


 오늘도 김이 빠지셨을 수 있으나 농담이 아닙니다. 이 글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보다는 주장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읽으신 분들께서 문장의 멋짐에 머리를 싸매지 않고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서, 멋진 문장을 쓰는 길을 걸어가시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발음 하나하나의 영창이 중요한 판타지의 마법 주문처럼, 한 줄의 대사를 이루는 특징적 구조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셨던 분이라면 이 글에서는 다소 유감입니다만 이것은 그런 종류의 기술을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는, 잠언이나 시를 위한 안내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 진리에 대한 깊은 통찰과 번쩍이는 언어적 재능은 설명문으로 기르기 어렵지요. 이 글은 오직,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 가상성을 띤 산문의 이야기 속에서 멋진 문장을 써내는 법' 을 주제로 합니다.




 소설 세계의 특징은 그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 모습의 거울상에서 기원했다 하더라도(장르에 상관없이, 세상이 존재하고 인물이 존재한다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해당 세계만의 독립적인 체계와 의미를 띠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가장 대단한 권능은 그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입맛대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이런 점은 백지에서의 창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아무것도 없을 때 무엇을 하고 놀지 정하는 것보다는 점토를 한 덩이 받았을 때에 '무언가를 만들면서 놀기' 로 하고 '그러면 점토로 무엇을 만들까' 하는 구체적인 고민에 진입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러나 또한 무제한의 자유란 무제한의 권능과 표현에서의 가능성을 담보하기도 합니다. 소설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쓰는 이의 자유입니다. 마치 손안에 쥐어진 제우스의 번개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은 현실과 독립된 이야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글 속에서 이야기의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여러 개의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계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그 이야기만을 위한 세계로서 의미를 띠기 시작하면, 개개의 단어들도 그냥 단어 이상의 의미들을 지니기 시작합니다.


 예시를 들어 볼까요? 여기 '바다'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다' 는 개인마다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겠지만 기본적으로 푸른 물이 가득 괴어 있는 지구상의 지리적인 부분을 나타내네요. 특징으로는 물이 짜고 배가 다닐 수 있다는 정도겠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한 편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작중에서는 내내 '두 사람이 가고 싶어하던 바다' 를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한 번도 욕조보다 많은 물을 본 적이 없다' 고 인물에게 말하게 하고, 트인 공간인 바다에 대비되는 어두운 실내 배경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심지어 이야기의 중반에서는 주인공이 혼자 버스를 타고 해안으로 가려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돌아오는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인물이 바다에 가지 못한 이유와 배경 설정, 그 환경에 얽힌 사람들, 하필이면 왜 바다에 가고 싶어하는지 등을 독자들은 알게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바다' 에 관련된 모든 단어들이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인물의 감정과 목적과 이야기의 주제와 얽혀들면서 수많은 연상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 이후에 '나에게 소라 껍데기와 흰 조개껍질들을 주워 와 주겠어요?' 라거나, '몰래 만날 때의 전나무 숲은 눈을 감는다면 파도 소리 같아서 좋았다.' 라거나, 하는 말들을 씁니다. 그러면 그 때 '바다' 가 '지구에서 물이 많이 고인 곳' 이상의 의미이듯이, '소라 껍데기' 도 '파도 소리' 도 단순한 낱자 이상의 의미가 되고, 문장 또한 따로 떨어진 하나의 서술만이 아니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야기를 끌고나간다는 것은 점점 단어에 하중을 싣는 일입니다. 사건, 감정, 분위기의 고조와 함께 '드라마틱' 은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언어의 무게도 점점 더 묵직하게 됩니다.


 (※본 문단 예시는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에 대한 내용과 설정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는 전형적인 루프의 이야기 구조를 띠면서도 진행의 곳곳에 반전과 결정적인 이야기의 실마리를 숨겨 두어, 이들이 하나씩 드러나며 서사와 이야기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여기에서 루프를 반복하는 인물인 '아케미 호무라' 가 처음 등장할 때에는 그 언행이 이해되지 않지만, 스토리의 숨겨진 부분이 드러나면서 마도카라는 하나의 존재를 구하기 위해 백여 회 이상, 근 8년 이상을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시간을 되풀이하는 중임을 알게 되는 이후로 호무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형언할 수 없는 무게를 띠게 되지요. 친구를 위해 고민하던 마도카가 또다시 자신을 희생하는 길, 즉 마법소녀가 되는 계약을 하겠다고 말하려는 때에 호무라가 뛰어들어 말리며, '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라고 할 때, 그 '소중하게' 가 그저 아끼는 마음 정도가 아니라 생의 전부를 쏟을 만큼의 깊은 헌신을(차마 바로 말하지 못하고) 녹여내서 하는 이야기임을 안다면 해당 대사는 표면 이상의 것이 됩니다. (더불어 작중에서는 표면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말을 표면만으로 들어서 호무라를 뿌리치고 떠나가는 마도카의 모습으로 인해 인물 간의 감정 관계가 비껴나가는 연출을 통해 '닿지 못하는 혼자의 사랑' 과 '고독한 싸움' 을 강조하지요.)


 그래서, 결국 명대사란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단어보다도 단어가 가지고 있는 맥락이 명대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 세계는 이야기와 함께 자라나고, 단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단어의 무게도 이야기와 함께 자라납니다. 무게는 맥락을 포함하고, 맥락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고조되는 지점에 핵심 문장이라 할 수 있는 명대사가 등장한다면 그 한 줄을 읽는 사람은 사실 한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고 그 몇 개의 단어들을 읽는 순간 이야기 전체를, 이것을 위한 세계 전체를, 몇만 자를 한꺼번에 읽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명대사들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수 시간을 들여 몰입한 서사와 세계가 하나의 순간에 압축되어 몰려드는 압도의 감각인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설명을 많이 하세요. 뒤로 갈수록 줄이세요. 이미 했던 이야기는 이미 포함되어 있는 세계의 재료이고, 더 무게를 주고 싶은 것만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렇게 세계를 만들어서 끌고 오다 보면, 후반부에 이르러서 독자는 '아, 어떻게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하고 감탄하겠지만 사실은 그 글 내내 바로 그 문장을 위해서 줄곧 준비하고 있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문장이 반드시 물리적으로 작품의 후반부에만 등장할 필요도 없는데, '맥락을 깨닫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은 이런 이야기였다' 는 것을 떠올려서 소름이 돋은 채 책장을 앞으로 넘길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혹은 초반에 지나가듯 등장했던 바로 그 장면이나 대사를 마지막에 슬쩍 흘려서 힌트를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운명처럼 빨려들고, 맥락에서 독립되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문장은 재능의 영역에 더 가까울 뿐더러 '이야기 속의 명대사' 와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그런 문장들은 오히려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경구들이지요. 쓰기도 어렵고 왕도를 찾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에 주어진 맥락이 없다면 언어는 각자의 실제 세계에 속하는데, 수많은 독자들이 모두 다른 각자의 맥락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는 문장 하나를 깎아내는 능력이란 고도로 날카로운 감성을 가지고 번쩍이는 운율의 아이디어를 집어내는 시인의 재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의 묵직하고 엄청난 문장은, 이야기 한 편을 끌고 올 정도로 엉덩이만 무거우면 웬만해서는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물론 이야기 한 편을 끌고 오는 것도 얼마간의 재능을 요한다는 점까지는 부인할 수 없지만요). 소설 속의 명문장은 소설 세계에 국한하기에 그 문장이 어떤 의미를 띨지,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되는지를 처음부터 작가가, 스스로 만드는 소설 세계 안에서의 무제한적인 자유와 권능을 통해 설계할 수 있고 유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접근하기도 좋고 쓰기도 쉽지요. 처음부터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이해되도록 자리를 깔아 둔 단어들이니까요.


 소설 속의 명문장은 시와 달라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처럼 빛나지 않고 이야기의 땅에서부터 자라납니다. 그러니 다시금 말씀드리건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세요. 그렇게 하면 어느 순간 만들어진 생생한 이야기의 세계 안에서, 말하고 다루고 싶었던 주제, 감정, 인상들을 담뿍 함축한 굉장한 문장들의 과실이 열려 빛날 겁니다. 읽다가 잠시 숨을 멈추게 하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될까 싶은. 결정적인 순간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해 써내리는 짜릿한 전율의 때를 그렇게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또 하나의 글쓰기의 즐거움이 되리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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